- 36년 '한글과컴퓨터' 역사속으로…한컴, '에이전틱 OS 기업'으로 다시 태어나다 - AI 매출 비중 11.21%·영업이익률 29%…실적으로 증명한 AI 전환 - 하반기 에이전틱 OS 베타 공개…글로벌 소버린 에이전틱 OS 시장 정조준
한컴이 36년 만에 '한글과컴퓨터'에서 '한컴(HANCOM)'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문서를 넘어 AI 기업으로 진화에 성공한 데 이어, 에이전틱 OS 기업으로 전환을 본격화한다.
한컴은 2일 주주총회를 열고 상호를 '한컴(HANCOM)'으로 바꾸는 정관 변경 의안을 의결했다. 1989년 창립 이후 한컴은 국산 워드프로세서 '아래아한글'로 한국어 문서의 표준을 세우며 국내 IT 1세대를 대표해 온 기업이다. 글로벌 오피스 공세 속에서도 시장을 지켜낸 토종 소프트웨어의 자존심으로 불렸다. 그 상징과도 같던 이름을 스스로 내려놓는 것은, 앞으로 바뀌겠다는 예고가 아니라 이미 바뀐 정체성을 공식 절차로 확정했다는 뜻이다.
◆ "이름이 아니라 정체성 변화"…실적이 증명한 AI 전환
'한글과컴퓨터'는 1989년 한국어 문서 처리의 표준을 세운 이름이다. 그 위에서 한국 디지털 사회가 자랐다. 그러나 이제 한컴이 다루는 영역은 '한글'과 '컴퓨터'를 훌쩍 넘어섰다. 문서를 넘어 데이터를, 컴퓨터를 넘어 AI 에이전트를, 한국을 넘어 글로벌로 사업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새 이름은 이미 바뀐 정체성을 담고 있다는 평가다.
사업 전환은 구호가 아니라 이미 실적으로 확인된다. 한컴은 지난 5월 창사 이래 처음으로 AI 실적을 공개했다. 지난해 별도 매출은 1,753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고, 이 가운데 AI 패키지 매출은 89억원, 비중은 5%였다. 주목할 지점은 성장 기여도다. 지난해 매출 순증분 162억원의 54.6%가 AI 매출에서 발생했다. 외형 성장의 절반 이상을 AI가 견인했다는 의미다.
AI 기업으로의 전환 속도는 올해 들어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1분기 별도 매출은 465억원으로 분기 최대치를 경신했고, AI 매출 비중은 전년 동기 0.04%에서 11.21%(52억원)로 상승했다.
한컴은 AI 기업으로의 전환을 안정적으로 이뤄내고 있기도 하다. 많은 기업이 AI 사업을 위해 막대한 비용을 쏟고도 수익을 못 냈다. 하지만 한컴은 지난해 별도 영업이익 509억원, 영업이익률 29%를 지키며 사업 전환까지 일궈내는 성과를 냈다.
한컴의 AI 기술력은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공인받고 있기도 하다. 대표 사례가 오픈데이터로더(ODL, OpenDataLoader)다. PDF 같은 비정형 데이터를 LLM이 학습하고 활용할 수 있는 정보로 변환하는 기술로, AI가 문서를 이해하고 다루기 위한 가장 앞단을 책임진다. AI가 일하려면 먼저 문서를 데이터로 읽어들여야 하는 만큼, 데이터 처리의 관문에 해당하는 핵심 기술이다.
경쟁력은 곧바로 성적표로 드러났다. 지난 3월 내놓은 2.0 버전은 출시 직후 글로벌 벤치마크 4개 부문을 모두 석권했다. 문서에서 정보를 얼마나 정확히 뽑아내는지 겨루는 종합 정확도에서 90%를 기록했고, 문서를 읽는 순서 인식(94%), 표 추출(93%), 제목 구조 인식(83%)에서도 도클링(docling)·마커(marker) 등 글로벌 경쟁 오픈소스를 모두 앞섰다. 반응도 즉각적이었다. 출시 두 달 만에 전 세계 개발자 1억 명 이상이 이용하는 세계 최대 개발자 플랫폼 깃허브에서 트렌딩 세계 1위에 올랐다.
◆ 소버린 AI 시장 정조준…에이전틱 OS로 글로벌 진화 추진
AI 기업으로의 진화를 마친 한컴은 '에이전틱 OS' 기업으로 전환을 본격화한다. 여러 AI 에이전트를 한 환경에서 연결하고 통제하는 운영체제로, 한컴은 AI 솔루션과 AI 에이전트를 잇달아 내놓은 데 이어 에이전틱 OS 출시 및 사업화에 나선다. 올해 하반기 베타 버전을 공개하고, 국내와 글로벌 시장을 함께 공략한다는 방침이다.
한컴이 정조준하는 타깃은 '소버린 에이전틱 OS' 시장이다. 데이터 주권을 완벽히 보호하면서도 다수의 AI 에이전트를 안전하게 구동하고 통제하는 시스템을 뜻한다. 현재 글로벌 AI 패러다임은 스스로 판단해 실행하는 '에이전트화'와 외부 종속을 거부하는 '주권화'로 빠르게 재편 중이다. 공공·국방·금융·헬스케어 등 민감 데이터를 다루는 산업군일수록 빅테크에 데이터를 위임할 수 없어 독자적인 에이전틱 OS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 유럽연합(EU)이 AI법(AI Act) 시행으로 데이터 주권을 법적 의무로 끌어올린 것도 이런 흐름을 보여준다.
한컴은 소버린 에이전틱 OS 상용화를 기점으로 기업들의 AI 전환(AX) 파트너로서의 입지를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이미 AX 레퍼런스는 공고하다. 업계에서는 최근 한컴이 BGF그룹(대기업)과 한국서부발전(공기업), 국회(정부기관) 등 서로 다른 산업군에서 각각 AX 사례를 잇달아 도출한 점에 주목한다. 보안과 문서 정확도, 내부 데이터 연계 등 요구 수준이 제각각인 산업을 두루 충족하면서 한컴이 산업별 실증을 사실상 마무리했다는 평가다.
구체적으로 한컴은 지난달 29일 한국서부발전에 AI 문서작성 솔루션 '한컴어시스턴트'를 공급했다고 밝혔다. 전력그룹사 가운데 처음으로 자체 생성형 AI 챗봇 '위피봇'에 한컴어시스턴트를 연계해 전사 문서 작성 환경을 구축한 사례다. 한컴어시스턴트는 서부발전이 보유한 사규와 법령, 업무 매뉴얼, 안전자료 등 약 72만 건의 내부 지식 데이터와 연동된다. 또 올해 한컴은 BGF그룹의 AI 지식 검색 시스템 구축을 마쳤으며 국회 AI 사업도 수행했다. 이 중 국회도서관 AX 사업의 경우 한컴이 요구사항 분석부터 납품까지 전 과정을 단독 수행했다. 이 과정에서 180만 페이지가 넘는 문서를 ODL로 데이터화하고, 한컴피디아 기반 검색 시스템을 구축한 바 있다.
에이전틱 OS 개발과 상용화는 속도감 있게 진행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컴의 강점으로는 이미 쌓아온 20만 고객의 신뢰 기반이 꼽힌다. 중앙부처와 시·도 교육청 상당수가 오랜 한컴 사용자다. 새로 개척할 시장이 아니라, 오래 신뢰가 쌓인 토대 위에서 AI를 확장한다는 뜻이다.
글로벌 시장은 유럽부터 공략한다. 한컴은 최근 유럽 기업들과 잇달아 업무협약(MOU)을 체결하며 유럽 시장 진출 로드맵을 명확히 하고 있다. 폴란드 국가공인 R&D 센터 7불스와 손잡고 에이전틱 OS의 유럽 현지화 공동연구에 들어간 게 대표적이다. GDPR·NIS2 등 까다로운 규제 안에서 사업해 온 7불스가 제품의 유럽 적합성을 끌어올린다. 폴란드 AI 기업 알고마인과는 공공부문 개념검증(PoC)을 함께 진행하는 MOU를 체결하기도 했다.
한컴은 DACH(독일·오스트리아·스위스) 시장을 17년간 누빈 영업 전문가 빅터 베네가스 멘도사 이사를 영입해 유럽 전략·제휴 총괄로 선임한 바 있다. 현지 인력을 통해 유럽 사업의 실행력을 더한 셈이다.
김연수 한컴 대표는 "사명 변경은 앞으로의 다짐이 아니라, 이미 이뤄낸 전환에 대한 확인"이라며 "36년간 쌓은 자산 위에서 한컴을 AI 기업으로 다시 세웠고, 이제 그 자산을 무기로 소버린 에이전틱 OS 시장을 열어 글로벌 표준에 도전하겠다"고 말했다.